‘연극’하면, 아무래도 샤프의 노래가 떠오릅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바라보는” 이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객석에 남아 있는 이도, 무대 뒤로 돌아간 배우들이 분장을 지우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리를 쉽사리 떠나지 못하는 마음은, 무대 위에 남아있는 것만 같은 이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연극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를 본 날에도 비슷한 마음이었습니다. 무대 위에 펼쳐진 이야기보다도, 연극 너머에 여전히 계속되는 이야기들이 더욱 마음에 남았습니다. 쉽게 떨어지지 않았던 발걸음이 지난 토요일 열린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 희곡읽기 모임을 만들었나봅니다.
역할을 종이에 나누어 들고 모인 이들과 함께 대사를 읽었습니다. 각자 맡은 배역에 몰입했어요. 대사 뿐만 아니라 ‘작은 소리로’, ‘마지못해’와 같은 지문들도 충실하게 살려 대사를 소화하는 Y님의 열연에 모두가 여러번 웃었습니다. 극이 끝난 뒤에는 서로를 향해 박수를 쳤습니다. 우리만의 커튼콜이었지요. 그리고 커튼콜 이후, 우리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 너머의 이야기를 상상하면서요.
혜인이 역할을 맡으셨던 J님은 혜인이가 교회에 남아 있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힘들겠지만, 그럴 것만 같다고요. 전도사 역할을 맡으셨던 C님은 목사에게 “혜인이를 잃고 얻는 게 무엇이냐”고 묻는 전도사라면, 적어도 극 중 목사보다는 더 나은 목사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어요. 저도 모르게, ‘그러면 좋겠다’고 속으로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이상한 일이죠. 이야기 속의 인물을 위해 기도를 하다니요.
하지만, 이내 그 기도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위한 기도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혜인이를 청어람 모임에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제 상상을 나누었어요. 어쩌면 다영이도, 성찬이도, 시영이도, 전도사도, 조금 더 욕심을 내본다면 목사도, 예수(극중 인물의 이름입니다)까지도 청어람 모임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요. 그렇게 말을 하고보니, 그 기도의 행방이 청어람이 만나는 사람들, 청어람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향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샤프의 노래는 “연극이 끝나고 나면 정적만이 남아 있다”고 했는데요.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 끝에는 기도가 남았네요. 이 기도가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덜 고독하게 만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