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8일) 오후 일정을 위해 서대문을 지날 때였습니다. 점심식사를 거르고 나선 터라 배가 고파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김밥 가게 간판이 보였습니다. 사실 그 김밥 가게는 그 지역에서 꽤 유명한 곳이라 예약을 하지 않으면 못 살 수도 있는 곳이었죠. 그래도 혹시나 싶어 조심스레 문을 연 후 빼꼼 고개를 내밀고 사장님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김밥 되나요?” 사장님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죠. “되죠. 추우니 어서 들어와요.” 앗싸! 속으로 외치며 들어서니 사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어쩐지 딱 한 줄만 더 싸고 싶어서 싸뒀다고. 세상에 이런 게 바로 은혜일까요? 김밥 값을 치르고 나오려니 사장님이 묻더라고요. “사무실에서 드실 건가요?” “어... 네...” “그럼 이거 선물이에요. 같이 먹어요.” 이 추운 날 점심시간을 넘겨 김밥 한 줄 사러 온 제가 짠해 보였는지 사장님은 컵라면 하나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마다하지 않고, 감사하다는 말을 여러 번 드리고 다시 길을 나섰죠.
나를 위한 딱 한 줄의 김밥이 남아있던 것도 참 감사한데 예기치 않게 컵라면 선물까지 받으니 잠시였지만, 추운 줄 모르고 걸을 수 있었습니다. 현실은 비록 사나운 추위 속이었지만, 따듯한 선의가 저를 살린 셈이죠.
요즘 저는 뜻밖의 은혜에 관해 생각하곤 합니다. 김밥 가게 사장님이 어쩐지 딱 한 줄만 더 싸고 싶어서 싸서 남겨둔 김밥, 추운 날씨에 김밥 한 줄 사러 온 아가씨를 측은히 여겨 내민 컵라면과 같은 작은 은혜의 순간들이 모여 오늘의 저를 살아가게 하는 것 아닐까 싶은 것이죠. 님이 뜻밖의 은혜를 누렸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저는 청어람을 통해서도 그런 은혜를 경험할 때가 많습니다. 후원 캠페인 소식을 알려드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후원자가 되어주고, 증액을 하고,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는 분들, 4년 만에 다시 진행하게 된 ‘세속성자 모임’에 모여주신 분들, 오며 가며 들려주신 분들... 청어람에게 찾아오는 모든 분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 자체가 저에게는 은혜입니다.
요즘 곳곳에서 마음을 무너뜨리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죠.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말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다른 곳을 볼 수 있으며, 담대하게 걸어갈 힘이 생기겠지요. 2024년이 다가오고 있네요. 님께 감히 희망을 드리지는 못하겠으나, 함께 고민할 기회를 더 자주 가지고 찾아올게요. 올해 저희의 글을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우리 서로에게 뜻밖의 은혜로 엮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