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기쁨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라고 인사를 드리기는 합니다만, ‘이거 너무 종교적인건 아닌가?’ 라는 반성을 동시에 해 봅니다. 긴 사순절을 알차게(?) 지나고나면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사순절을 맞아 늘 경건하게 살려고 애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청어람도 그래서 채식 순례를 하고, 유대인과 이스라엘에 대해 읽고, 시와 기도의 언어를 생각하고, 매일 성경을 읽고, 매주 예배 자료를 발행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온 일상과 생각이 사순절이라는 종교적 틀에 매여버린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될 때가 있습니다.(물론 저는 전업종교인입니다만…)
지난주는 채식순례의 연장선에서 ‘달뜨는 보금자리’를 찾았습니다. 불법 농장에서 구출되어 자신들만의 천수를 누리고 있는 꽃풀소들을 만났어요. 미리 책도 읽고 여러 기대를 갖고 갔는데 저뿐 아니라 대부분 참가자들의 압도적 첫 인상은 ‘소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었어요. 이미 갖고 있던 이미지를 넘어서는 존재를 만나고, 비언어적 방식으로 교감하고 소통하는 경험은 경이와 신비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사순절 기간에 추구했던 경이와 신비와는 달랐지만, 마냥 다르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신비와 경이에 대해서 며칠째 곱씹고 있습니다. 예배당 밖에서 만난 생명 앞에서 예배당 안에서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면 그 둘을 구분할 언어를 찾으려 노력해야 할까요, 둘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는 통합적 언어를 찾으려 노력해야 할까요? 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성과 속을 구분하는 선을 선명하게 긋기보다는 둘이 부드럽게 섞인 사이-공간을 찾고 거기서 일상을 가꾸는 것이 ‘종교 과잉적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더 좋은 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부활의 기쁨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저와 여러분의 일상에, 그리고 온 세계에도요. 여전히 전쟁이 멈추지 않는 중동과 우크라이나에, 국경을 넘어 낯선 곳에 뿌리를 내리려는 이주민들의 삶에, 일상적 차별과 혐오 앞에 노출되어 신음하는 이들의 매일에, 기후위기로 붕괴되고 있는 이 지구의 모든 존재들에게. 부활이 종교적 언어로만 머물지 않고, 정말 생명과 평화의 힘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예배당 안팎의 경계 없이 부활을 발견하고, 그 부활을 더 많은 자리로 들고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청어람도 부지런히 그 자리를 찾아 나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