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오늘 아침 개미가 단장하는 모습을 보셨나요?
지난주 금요일과 토요일, 청어람은 기획위원들과 함께 성공회 성프란시스 피정의 집에 다녀왔습니다. ‘쉼과 우정을 쌓는 시간을 보내보자’는 것이 이번 피정의 목적이었어요. 그 목적 그대로 쉼과 우정의 시간을 잘 보내고 왔습니다.
저는 이번 학기 수업조교를 하고 있는 터라(저는 프로 N잡러입니다!) 교수님께 미리 “피정 중이라 연락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문자를 드렸는데요. 교수님은 “피정이 뭐예요?”라고 질문하셨습니다. “피정이 무엇이다!” 라고 짠 말씀드릴 수 있었으면 더 멋있었을텐데, 저도 그 순간 피정을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녀오고 나서 무엇인지 알게 된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하고 답했지요. 이번 피정이 저의 첫 피정이었거든요.
피정의 집에 도착해 방으로 들어갔을 때, 습관처럼 들여다 본 핸드폰 화면에 주파수가 한 칸도 채워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샤워하러갈 때도 핸드폰을 들고가는 종류의 사람이라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방에서부터 ‘이게 피정인가’하는 생각을 했어요. 현대사회에서 일상에서 벗어나 고요한 곳으로 머물기 위해서는 핸드폰부터 먹통이 되어야 하니까요. 처음에는 불안할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묘한 해방감이 생겼더랬습니다. ‘전화해도 어차피 못받지롱!’하는 마음이었달까요. 그런 김에 아예 핸드폰 전원을 꺼놓았습니다.
핸드폰 없이 1박 2일 시간을 보내며, 핸드폰에 빼앗겼던 눈을 다른 곳에 두는 경험을 했어요. 수사님이 저녁 반찬으로 내어주신 버섯의 모양도 눈으로 담았구요. 밤이 다 하도록 기획위원들과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말하는 이의 눈을 이렇게 오래 쳐다본 것도 얼마나 오래간만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소 같았더라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SNS한바퀴를 돌았을텐데 이 날에는 새벽녘에 일어나 산책길을 나서기도 했습니다. 물안개가 자욱한 풍경, 아침이슬이 맺힌 나무의 잎, 나무 위에 올라 더듬이를 한참 단장하는 개미의 움직임도 보았습니다. 핸드폰만 꺼놓았을 뿐인데 바라보는 풍경이 달라지는 것이 참 신기한 일이에요. 서울에도 개미는 있었을텐데 왜 이런 모습을 이제까지 보지 못했을까요.
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일년에 한 두번 쯤은 피정의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간 내어 또 오라는 수사님의 다정의 배웅이 있었기 때문도 있고, 또 하루 한나절 내가 열심을 내지 않아도, 이 세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는, 꼭 어느 곳으로 길을 나서야 피정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일상 중에서도, 잠시 멈춰서 가득찬 것을 비우는 시간을 가져볼 수는 없는 것일까?’ 하고요. 곁에 있는 이의 눈을 마주하고, 개미의 단장을 지켜볼 수 있는 여유가 님의 일상에 있기를 바랍니다. 어디 먼 곳을 떠나지 않더라도 말이예요.
혼자서 비어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어렵다면, 청어람과 함께 그런 시간을 가져보아도 좋고요. 말만 주세요, 개미의 부지런한 단장을 배우러, 함께 길 나서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