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도둑처럼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국민의 안전과 안녕을 지켜야 할 대통령이 ‘도둑’처럼 우리 일상을, 애써 지킨 민주공화국을, 국민의 주권을 침탈 시도한 것입니다. 군통수권자의 명령을 받은 ‘군홧발’들로부터 나라를 지킨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국회로 달려간 국민들이었습니다. 그렇게 ‘12.3 내란 사태’는 일단 종결된 것 같지만 우리의 일상은 12월 3일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의하고 위험한 내란 우두머리가 계속 대통령 자리에 앉아있는 ‘비상상황’은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12월 7일 많은 국민들이 다시 광장에 모였습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홀로 혹은 단체로, 강아지들도 모여 ‘탄핵’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한을 빨리 정지시킬 책무가 있는 여당은 오히려 ‘내란 공범자’가 되기를 자처하고 국회 본회의장을 떠났습니다. 참으로 질서있게 국민을 등지더군요. 그렇게 국가를 통치할 명분과 자격을 스스로 버린 자들이 현재 국가를 통치하겠다고 버티고 있습니다.
이런 참담한 상황에 대해 ‘다급한 비통함’을 안고 동료들과 함께 광장으로 나갔습니다. 12월 7일 오후 1시에 종로 5가에서 700여 명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시국 기도회를 드린 후 보신각까지 행진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국회 앞으로 향했습니다.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 9호선 국회의사당역과 5호선 여의도역이 무정차 운행을 한다기에 5호선 여의나루역에서 내려 많은 분들과 함께 묵묵히 집회 장소까지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집회 장소에는 정말 다양한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다급한 비통함’은 어느새 ‘명랑한 투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름은 ‘촛불집회’였지만, 상황적으로는 ‘응원봉집회’였습니다. 좋아하는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나온 청년들이 만들어낸 형형색색의 빛들이 집회장을 수놓았기 때문이죠. 밤이 되자 집회 장소는 ‘탄핵클럽’으로 변했습니다. 케이팝 비트가 ‘탄핵’ 구호와 어찌 그리 잘 어울리던지요. 저도 ‘네 글자’ 구호(탄핵하라! 체포하라!)의 전통에서 벗어나 ‘세 글자’ 구호(탄핵해! 체포해!)에 차츰 익숙해졌습니다. 깃발도 다양해졌습니다. 각자의 성향, 자신이 덕질하는 것을 표현한 깃발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위로가 되고 기운이 차올랐습니다. 여러모로 '기운'이 달라진 집회였달까요.
많은 분들이 이런 현상을 주목하고 놀라기도 하고, 청년들을 ‘기특하다’ 여기기도 하고, 이 ‘새로움’의 출현에서 ‘희망’을 봤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청년들과 여성들은 ‘지금’ 새롭게 나타난 이들이 아닙니다. 이제야 비로소 발견된 것에 가까울 뿐입니다. 그 청년들과 여성들은 세월호 참사 등 국가적 재난의 목격자, 차별과 불평등, 불의와 싸우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존재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날 광장에서 우리가 본 것은 ‘지금’ 나타난 ‘새로운 존재’가 아닌, ‘벌써’ 존재하고 있던 이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시대’ 일 것입니다.
"가장 어두운 때에 가장 밝은 것을 가져오고 싶었다."
"촛불은 꺼지지만, 꺼지지 않는 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야광봉을 들고 케이팝을 들으며 탄핵 구호를 외치던 이들의 말입니다. 이 말처럼 새로운 시대는 형형색색의 야광봉과 꺼지지 않는 불꽃이 앞장서고 있는 것 아닐까요?
윤석열과 그 일당은 모든 낡은 것들의 정점이자 불의의 총합으로써 빠르게 폐기될 것입니다. 윤석열뿐 아니라, 여전히 변화하지 않는 모든 낡은 것들은 빠르게 종말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는 탄핵을 이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이룰 것인가의 문제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새로운 시대의 주체와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가 앞으로 우리가 치열하게 해야 할 질문이 될 것입니다.
물론 이 ‘새로운 시대’는 저절로 오지 않겠지요. 우선 내란 공모자들을 제대로 처벌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저는 윤석열, 그와 함께 내란에 가담한 자들, 국회 본회의장을 떠나는 것으로 민의를 저버린 105명의 국민의힘 의원들은 가장 먼저 폐기되어야 할 ‘낡음’이라고 생각하기에 앞으로도 광장에 ‘따박따박’ 나갈 것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시대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비록 짙은 어둠뿐인 시절이지만 이런 사태가 ‘새로운 시대’를 앞당기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견딜만 합니다. 광장에서 반갑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