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고난, 부활을 기억하는 사순-부활절은 예수님의 오심과 성육신을 기억하는 대림-성탄절과 함께 교회력의 큰 두 축을 이룹니다.
부활절이 이 기간의 절정이기 때문에 사순절 기간은 부활절로부터 결정됩니다. 전통적으로 춘분이 지난 후 첫 번째 보름달이 뜬 다음 주일(뭔가 신비로운 기운이…)을 부활절로 지켜 왔는데요, 부활절 날짜로부터 40일을 거꾸로 세면 사순절이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주일은 빼고(주일은 쉽니다) 세기 때문에 사순절 기간은 정확히는 47일이 됩니다. 재미있게도 동방교회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모두 제외해서 세기 때문에 부활절 기간이 8주가 된다고 합니다(우리도 주 5일제 도입하자…). 어쨌든 올해는 2월 14일을 시작으로 3월 30일까지가 사순절 기간이고, 3월 31일이 부활주일입니다.
사순절이라는 명칭은 그 기간인 40일에서 왔습니다. 40이라는 숫자에서 우리는 성경의 여러 상징을 생각해 볼 수 있지요.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이 40년이었고, 예수님이 세례받으신 후 광야에서 했던 금식도 40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간에 전통적으로 교회는 구원과 부활에 이르기 위한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경건을 연습하는 기간으로 보냈습니다. 차분하고 금욕적인 정서가 사순절의 주된 정서로 여겨지는 이유지요. 사순절에는 금욕과 금식이 권장되었습니다. 축제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카니발도 사순절 금식 기간에 들어가기 전 미리 먹고 즐기기 위해 생겨난 것이지요. 실제로 지금도 카톨릭에서는 사순절 기간 기도, 자선, 금육과 단식이 의무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개신교에서도 사순절 기간 릴레이 금식이나 미디어 금식 같은 프로그램을 많이 하기도 하죠.
하지만 사순절은 봄과 함께 오는 생명의 절기이기도 합니다. 사순절을 의미하는 영어 Lent는 앵글로색슨어 lencten에서 유래했는데 봄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부활절의 날짜가 춘분을 기준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사순절은 항상 겨울의 끝자락에서 시작해 봄이 움터오는 시기에 겹쳐 있습니다. 겨우내 말랐던 나무들이 초록 싹을 틔우고 환한 꽃을 피워내는 것이 사순절의 이미지이기도 하죠. 마침내 부활로 활짝 피어 날 생명의 기운을 묵상하고 준비하는 절기로 사순절을 보내는 것도 의미 있습니다. 사순절의 경건과 차분함이 단지 금욕적인 차분함만은 아니라, 생명의 기운을 준비하고 북돋우는 차분함이면 좋겠지요.
사순절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요? 절제와 금욕, 경건의 의미와 피어나는 생명의 의미를 합쳐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청어람은 지난 수년간 사순절 기간을 생명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간으로 보내왔습니다. 제로 웨이스트, 초록 실천, 채식 실천 등을 하며 기후 위기 시대에 스스로를 절제하고 생명을 살리는 새로운 실천을 모색하는 기간으로 삼았습니다. 올해도 채식 순례를 준비하고 47일간의 순례 여정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신앙과 채식이 무슨 상관이냐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채식은 육식을 당연히 여겨왔던 문화와 식습관에 의문을 제기하고, 더 평화롭고 건강한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식습관이자 생활 방식입니다. 우리는 채식에 대해 고민하면서 육식에 대한 단순한 반대가 아니라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다른 종과 생태계에 무해한 삶의 습관, 소비와 낭비를 멈추고 절제하는 삶의 습관, 스스로의 삶을 더 건강하게 가꾸어가는 삶의 습관이 무엇일지를 모색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삶의 습관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민하며 실천해야 할 신앙적 삶의 태도와 연결되어 있기도 합니다.
조금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이번 사순절에는 채식을 한번 실천해 보면 어떨까요?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지금-여기에서 할 수 있는 실천을 모색하고 연습해 봅시다. 하루하루의 작은 묵상과 실천이 쌓여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삶을 향한 상상력과 희망을 키우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