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전남 신안의 작은 교회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처음 보았습니다. 금요 철야 기도회가 한창이었고, 어린 저는 할머니의 무릎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 순간 올려다본 스테인드글라스의 푸른빛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실은 진짜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니었을 거예요. 보통 시골 교회에서는 유리창에 필름을 붙여 그와 비슷한 효과를 내곤 했으니까요. 그래도 그날의 나른한 신비는 제 신앙 여정의 소중한 한 조각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후엔 다양한 장소에서 진짜 스테인드글라스를 보았습니다.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로 둘러싸인 대성당에서도 보았고, 떼제 공동체의 작고 소박한 스테인드글라스도 보았죠. 그때마다 한참을 넋 놓고 서 있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뚜렷한 목적에 따라 제작된 설치물이지만, 그 목적과는 별개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습니다. 저도 스테인드글라스를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착색된 각각의 유리에 햇빛이 투과되며 여러 색으로 흩어지고 일렁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신비롭습니다. 형형색색의 빛들이 벽과 바닥을, 사람들의 등을 비추는 모습은 어쩐지 안도감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합니다.
지난 6주간 청어람에서는 ‘세속 성자 글쓰기 - 나의 신앙 여정 돌아보기’가 진행되었습니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지난 신앙 경험을 글로 옮겨 적었습니다. 모임에선 그 글을 함께 읽으며 서로의 감상을 나누었지요. 우리가 각자 쓰고 함께 읽은 글 속에는 교회에서 한없이 사랑받았던 시절도 담겨 있었고, 여전히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경험도 기록돼 있었습니다. 참여자들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일화를 나누며 깔깔대기도 했고, 자신이 쓴 글을 낭독하다가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나눈 적 없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모임이 끝난 후에도 모임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저와 함께 지내는 듯했습니다.
타인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만나는 경험은 언제나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 이야기들이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지난 경험들을 다시 비추어 주니까요. 낯설고 새로운 모양으로, 때로는 뼈아픈 진실을 드러내는 방식으로요. 레이첼 헬드 에반스의 글이 저에게 전 세계 복음주의권 교회의 공통 경험을 재조명해 주었다면, ‘나의 신앙 여정 돌아보기’는 저를 한국교회의 더 깊은 역사 안으로, 그곳에서 자란 제가 여전히 풀지 못한 고민과 아픔 속으로 데려다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저에겐 너무 익숙해서 시시해진 제 지난 교회 경험들이, 모임이 이어질수록 괜스레 애틋하고 소중하게 다가오더라고요. 마치 새 옷을 입은 것처럼요.
한국교회의 역사는 누구의 것일까요? 교회에서 사랑받고 상처받은 사람들, 원치 않게 교회와 멀어진 사람들, 여전히 교회를 그리워하고 미워하며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의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모임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자주 떠올렸습니다. 다양한 빛깔의 이야기들이 저마다의 자리를 얻는 것만 같았거든요. 그 자체로 아름답고 충분히 의미있는 모습으로요. 웅장한 건물은 눈앞에 없었지만, 모임 내내 조용히 일렁이는 빛에 감싸인 듯 신비롭고 안전했습니다. 우리 모두의 신앙 여정이 보호 받고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어느새 제가 처음으로 진행한 청어람 모임이 끝나 버렸군요. 앞으로도 더 멋진 조각들, 보다 더 진실되고 용기 있는 조각들을 찾아나서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님도 초대하고 싶어요. 새롭게 시작된 여름에도 청어람으로 오세요!!
“지금의 이 알아차림도 또 어느 세월 후에는 '아니었나?' 하는 갸우뚱으로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더듬더듬해 나가는 과정 또한 내게는 신비인 것 같다. 이렇게 오락가락해 보는 것이 내게는 하느님을 찾아나가는 과정인 것 같다.” - 참여자 A님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