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좋아하시나요? 저는 좋아합니다. 아무 주제 없이 네이버 블로그에 일기 쓰는 걸 가장 좋아합니다. 제 첫 공개 글쓰기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였습니다. 2004년에 미니홈피를 만나고 저는 제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다이어리'에는 그날 있었던 일들을 시시콜콜 적었고, '게시판'에는 아무도 관심 없을 제 어릴 적 이야기나 좋아하는 가수들 이야기를 적기도 했습니다. 2010년대에 들어 싸이월드의 인기가 시들해졌지만 저는 싸이를 꿋꿋하게 지켰습니다. 페이스북으로, 인스타그램으로 떠나던 제 ‘일촌’들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면서요. 제 미니홈피 방문자는 채 10명도 남지 않게 되었지만, 그때에도 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다이어리'에 글을 올렸습니다.
혹시 ‘싸이북’을 기억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어요. 10년 전 무렵 싸이월드는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이용자가 그간의 모든 데이터를 다운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하지만 돈을 내야 했죠. ‘싸이북’이란 명칭은 달았지만 그냥 저용량 PDF파일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몇 만원을 지불하고 그 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싸이월드에 올렸던 모든 사진과 글을 남겨두고 싶었거든요. 어설픈 편집본을 5개의 파일로 나누어 다운로드 받았죠. 그때 생각했습니다. ‘이제 진짜 싸이와는 이별이구나’. 그렇게 쫓겨나듯이, 연인과 헤어지듯이 블로그로 제 온라인 거처를 옮겨 갔습니다.
사람들은 왜 글을 쓰고 싶어할까요. 저는 글 쓰고 싶은 마음의 바탕에는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열망이 흐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을 알아줄 누군가일 수도 있고 아직 만나 본 적 없는 우정일 수도 있겠죠. 그 누군가는 어쩌면 나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나, 충분히 잘 대해주지 못했던 과거의 나, 일하고 생활하느라 일상의 감각을 닫아건 채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나. 우리가 자신의 경험에 관한 글을 쓸 때 마주하는 대상은, 그런 ‘무수한 나’인 지도 모릅니다. 나를 이해하고 싶어서, 새롭게 만나고 싶어서, 불화했던 나 자신과 화해하고 싶어서 우리는 이미 흘러가버린 시간을 돌아보고는 합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기어이 글을 쓰기도 하죠.
저는 유명인의 성공담보다 누군가의 사적인 이야기가 좋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소한 경험과 아득한 추억들, 깊은 상처와 취약한 면면들이 제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아무래도 자서전(Autobiography) 보다는 회고록(Memoir)에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회고록은 사적이고 내밀한 ‘나의 이야기’로 촘촘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저자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용감하게 드러낼 때 그가 속했던 사회의 단면이 새롭게 조명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회고록에는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지나갔던 진실과 풀어야 할 숙제가 담겨 있습니다. 때로 그것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효한 질문으로 번져오지요.
레이첼 헬드 에반스의 회고록은 2010년대에 동시대의 신앙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레이첼은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들을 돌아보며 미국 남부의 보수적인 교회에서 아무도 제대로 이야기 해주지 않았던 것들, 모두가 꺼려왔던 질문들을 꺼냈습니다. 진실되고 가감없는 레이첼의 이야기는 미국 교회와 사회를 들썩이게 만들었습니다. ‘기독교란 무엇인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되묻게 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레이첼의 회고록을 읽으며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남부 개신교 만큼이나 보수적인 한국 교회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제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건 아마도 레이첼과 제가 비슷한 질문을 통해 서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가능했겠지요.
여러분의 신앙 여정에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내가 교회에서 사랑받고 있다고 느껴졌던 때는요? 반대로 내가 너무 형편없다고 느껴졌던 순간도 있으시겠지요. 목회자나 리더를 동경했던 때와 크게 실망했을 때, 내 안의 질문들을 털어놨을 뿐인데 위험하고 믿음 없는 사람으로 여겨져 깊이 상처 받았을 때, 내가 사랑했던 교회가 너무 미워서 온몸에 화가 뻗쳤을 때. 그 시간들은 지금도 우리 안에 남아 있을 겁니다. 그 어떤 이론이나 분석으로도 온전히 포착되기 어려운 우리 몸의 감각과 감정의 응어리로서 말이죠. 저는 레이첼 헬드 에반스의 글을 읽으며 우리가 과거를 꾸준히 돌아보아야만,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해야만 ‘교회에서 밀려났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거기서 나의 과거와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화해를 꿈꿀 수 있다는 것도요.
‘세속성자 글쓰기’에서 그 대화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떠세요? 우리의 신앙 여정을 돌아보면서, 과거의 내가 무심히 흘려보냈던 나 자신을 다시 만나러 가는 것이지요. 조금 부담스러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내 안에서 대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싶어 막막하실 수도 있고요. 하지만 우리가 레이첼 헬드 에반스가 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럴 이유도 없고요. 그저 우리 자신이 되어 내 이야기를 써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미니홈피에 다이어리 쓰듯이, 블로그에 일기를 쓰듯이 부담 없이 참여하셔도 분명 즐겁고 멋진 시간이 될 거라고 자신합니다.
저는 싸이월드 이용자로 지내던 10년 동안 제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써내려갔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그 경험이 싸이월드가 저에게 준 큰 선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글을 올리면 대개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만 우울해 하고 자라’ 같은 애정어린 악플(?)이 달렸습니다. 하지만 가끔 ‘네 다이어리를 보러 가끔 들른다’, ‘힘이 된다’ 같은 댓글을 받기도 했어요. 별 뜻 없이 건넨 응답이었겠지만, 큰 응원이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저도! 이번엔 모임의 진행자로서 여러분의 글에 댓글을 달아드리려고 해요.
나 자신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분, 내 마음을 잘 헤아려 줄 글쓰기 동료들을 만나고 싶으신 분,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사소한 이야기가 더없이 소중해지는 광경을 목격하고 싶은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온라인 참여도 가능하니 가벼운 마음으로 문을 두드려 주시면 좋겠어요. 그럼 글쓰기 모임에서 뵙겠습니다.